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작년 여름 부모님께 생 떼를 썼어요.

서울 근교에 방을 하나 잡아 거기서 생활 하겠다구요. 그것도 3살 덩치 큰 샤페이 장군이와 함께요. 별 다른 수입도 없었구요, 날도 더웠구요. 당연히 안되죠. 저는 그때 온전히 저만의 공간을 갖고싶었던 것 같아요.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의 저자 김정운 선생님이 여수로 떠난 이유 처럼요.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라

책 앞에 대문짝만하게 써있는 문장이에요. 하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공간에 대해 집착하는 저를 잡아당겼던 문장이에요. 작업환경, 집 등 실내 공간에 중점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책에서 다루는 주된 공간은 여수 바다와, 저자가 낡은 창고를 개조한 미역창고(美力創考)라는 작업실 이였어요.

공간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 이를 통해 공간에 집착하는 저의 모습을 이해해보고자 책을 들었는데 이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어요. 이런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에요. 책은 저자의 여수생활에 대한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져있어요.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 몇개 옮겨볼게요.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에요. (줄바꿈에 주의해서 읽어주세요!)

배를 타며 나는 이제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상을 배운다. ‘물때’다. 여수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 *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이 들 때가 있고, 나갈 때가 있다.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가 당연히 있다. 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 항상 잘되어야 하고, 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

내용도 좋지만 저는 서술 + 대명사의 구조에 감탄했어요. *물때 *와 조급함 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 읽는 맛이 좋았다고 해야할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크게 불안할 이유는 없다.

가만 생각해보면 진짜 그렇지 않나요

위로가 되고, 재치있는 문장 뿐만 이니라 심리학 내용도 종종 등장해요. 그 중 마르크스가 주장한 ‘소외’에 대한 소개입니다.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면 마르크스의 ‘소외’ (Entfremdung)다. 자신이 만든 생산물 과는 아무 관계 없이, 그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노동의 결과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삶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삶’ 이라 했다. 정신이 자연에 변화를 가져와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는 헤겔의 낭만적 ‘외화’ 개념을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맥락에 맞춰 비판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개념들은 대부분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심리학적으로 그의 ‘소외론’은 여전히 통찰력 있고 의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외’는 따돌림이 아닌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잃고 비인간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는 일 *이 더 적합할 것 같네요.

비인간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말은 무슨말 일까요.

‘장인의 혼을 담아. …’ 장인만 혼을 담지는 않을거에요. 비슷한 말로‘~갈아 만들었다’ 라는 말이 요즘 많아요. 디자이너 여럿 갈아만든 포스터에요, 하구요.

대부분의 생산품은 여러 노동자들의 정신력을 담아 만들었어졌을 거에요. 하지만 ‘자신에 의하여 생산된 결과물이 자신과 소원해지고 대립하며 심지어는 자신을 지배하게 되는 것’ 마르크스는 소외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했어요.

딱 이런거죠. 임원이 자신이 10년간 해온 사업이, 언제든지 주주의 의사결정에 따라 사업과 자신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립하게 되며, 자신을 지배하고, 해고당하는 날에는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까지 위협해요.

책 리뷰하다가 갑자기 무서워졌네요… 여튼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저자의 바닷가 작업실과 여수 바다처럼 저의 공간을 갖고싶어요.

반복의 느린 變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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